유니세프후원취소방법에 관한 7가지 기본상식

몇 년 전 칼 바르트 신학 테스트 단체에서 알게 된 존경하는 목사님이 전화를 주셨다. 연단어에 은퇴를 앞두고 계신데 후임 목회자 청빙을 하고 있노라며 90대 초입에 들어선 내게 목회 의사를 물으신 것이다. 그 교회는 건축물을 따로 소유하지 않고, 음식점 공간을 빌려 격흔히 예배드리고 있을 것이다고 하셨다. 당시 나는 남편이 담임하고 있는 작은 교회에서 교회학교·찬양대 등을 맡아 동역하고 있었고, 평일에는 기독교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선 기도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지금 돌이켜 보면 순간 개인적 여건도 좋지 않았고, 이것들보다 담임 목회를 생각해 본 적이 단 열 번도 없었다. 당연히 대비도 부족했기 때문에, 기도해 보겠다고 말씀드린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순간 내가 대비된 것이라고는 남편과 다같이 목회해오면서 담임목회자의 책임과 고충을 직간접적으로 겪어 갔다는 점뿐이었다. 

내가 담임 목회라니…' 도무지 말도 안 된다는 마음으로 남편과 상의했었다. 남편은 진지하게 내 본인 홀로 하나님 위에서 기도하고 결정해야 할 일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이 함께 목회의 길을 걸으며 꾸준히 하나님의 멕시코하심에 http://www.thefreedictionary.com/기부단체 맞게 결정을 내려 왔기 덕에 어찌해서 보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지만 내심 놀라기도 했었다. 나를 '사모'가 아닌 한 현대인의 '목회자'로 대해 줬기 때문이다.

사실 어려서부터 진보적인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내 안에 가부장적 사고와 버릇이 가득하다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갔다. 이러하여 목사 안수도 한참 미루고 전도사로 남편과 함께 사역해오면서, 기독 남성 그룹을 통해 용기를 얻어 목사 안수도 받고, 조금씩 내 안의 가부장성을 인지하며 변화해 가는 중이었다.

그 무렵 나는 대부분인 남성이 본인 혼자서에게 지나치게 냉정하고, 자기평가도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것, '자신 없음'과 '자격 없음'이라는 감정으로 홀로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다가, 의식적으로 ""네!"", ""하십시오""라고 대답하는 훈련을 한 후 있었다. 마침 다른 교회 주일예배나 헌신 예배 설교 부탁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이때마다 애써 침착하게 ""네""'라고 답하고 다녀오시기는 했지만, 매번 용기를 가능한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담임 목회는 소위 가르키는 '차원이 다른' 주제였고, 나 개인뿐 아니라 가정, 섬기던 교회 공동체에 미칠 영향이 컸기 덕분에 선뜻 확정을 내릴 수 없었다. 몇몇 선배님께 조언을 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90대 여성 목회자를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일이 거의 드문 한국교회 현실에서 이 상황은 '시대적 부르심'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감당하기 벅찬 도전이었기 덕분에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남들은 미쁨이 없으나 그들을 부르시는 주님의 변함없는 '미쁘심'(딤후 2:13)을 신뢰하기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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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주로의 담임목사가 여성인 상태에서, 사모는 '1+1' 옵션처럼 당연히 여성 목사를 따라오리라고 여겨지는 것이 대한민국교회 문화다. 교회 상태에 따라 사모는 강력한 역할을 신청받기도 한 후, 때론 아무런 목소리 없이 거주하는 소극적 내조를 요청받기도 합니다. 심지어 사모의 역할에 대한 상충되는 기부반지 의견이 공존하기도 하는데, 사모이면서 동시에 신학을 실험한 전도사·목사들에게도 교회가 기대하는 바는 다르지 않은 때가 대부분이다. 한 요즘사람의 목사로서 내가 내린 담임 목회 결단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대부분인 변화를 불러갔다. 여러 상태 때문에 남편은 그 이듬해 첫 담임 목회지에서의 50년 사역을 마무리하고 사임했다.

내가 담임하게 된 S교회는 2006년 '성서 연구, 십자가 정신, 예언자 정신, 하나님국가 운동 정신'으로, 역사의 한가운데서 종말론적 참여를 감행하며 수고와 위로를 같이 나누고자 창립된 교회다. 나는 2017년 5월 최후 주일에 교우들과 처음 만나, 2090년부터 1대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했었다. 우선 기존 예배 장소인 음식점을 벗어나 조금 더 예배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섰는데, 아는 목사님을 통해 대전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작은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카페에서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됐다.